성 피에트로 대성당(St. Peter`s Rom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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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테도 율리우스2세도 교차부의 주요한 아치들이 완성될
즈음까지밖에 살지 못했으며 이 사업의 資金을 대기위한 교묘
한 계략에 의해 발생된 대파괴사태를 함께 겪도록 까지 살지도
못했다. 율리우스 2세는 이 건물의 재정을 위해 전유럽의 설교
자를 보내어 이 건물 기금을 기부금으로 내는 사람은 免罪符를
얻을 것이라고 설교하게 했다. 이런 기금 獻納행위는 죄인들이
免責 받기위해 고해성사를 하는 의식과 대등한 것으로 看做되
었다. 따라서 이 착상은 대 성공을 거두었고 돈이 물밀듯이쏟아
져 들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에는 불행스런 부산물이 따라
왔으니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이 그것이다. 마틴 루터등의 인
물들이 율리우스2세의 면죄부 행상이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
님의 용서를 돈으로 파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종교개혁 전체를
이 한가지 문제만으로 설명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사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宗敎改革의 불길을 타
오르게 한 點火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건물에 있어서 다음 단계는 그 설계를 세부적으로 전개시키는
일이다. 聖 피에트로 성당에서 우리는 다시 이 과정을 느린 동
작으로 볼수가 있다. 브라만테가 1513년에 율리우스2세의 죽음
과 1514년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맡았던 성 피에트로
성당의 감독 작업기간동안에 그의 작업실에는 결국 그 건축 작
업의 向方을 결정하게 될 몇몇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브라만테
에게 고용된 것은 아니자만 화가 라파엘은 1514년부터 1520년
사이의 협동 건축가로 이름이 남을 만큼 이 작업에 밀착해 있
었다. 우리로서는 화가를 거대한 건축 사업의 책임자로 세운다
는 것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中世末 이래로 취미와 판단
력이 요구되는 어떠한 거대한 작업에도 모든 종류의 예술가가
책임자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라파엘은 최소한 브라만테의 보
조원이었다는 잇점을 갖고있었다. 성 피에트로 성당에 대한 그
의 관념은 유명한 그의 그림<아테네 학교>에서 분명히 드러날
수 있다. 그 속에는 커다란 볼트 천장을 가진 공간 속에 수많은
고대 철학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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