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업로드
2. 위안부의 역사적 배경
일본군 ‘위안부’ 시설 설치의 직접적인 배경은 일본군의 해외파병과 침략이었다. 특히 해외에 파병된 일본군이 현지인에게 저지르는 성적 만행은 일본군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현지인들의 항일의식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무분별한 성적 접촉은 일본군 내에 성병의 만연을 가져와 전투력 유지에도 많은 지장을 주었다. 일본군의 엄한 군율로도 이를 통제할 수 없었으며, 엄한 군율은 오히려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조그마한 일에도 서로 싸우는 정서적 불안정을 가져와 군기의 확립에도 지장을 주었다. 군부 수뇌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하여 군에서 직접 통제, 관리하면서 사병들이 정기적으로 위안소를 찾게 함으로써 군의 불만을 유화시키는 정책을 구상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개인으로서는 대단히 예의를 잘 차리면서도,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나 제도적 또는 집단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이 비록 비윤리적일지라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일본인의 가치의식으로는 그 행위가 어떤 것이냐를 따지는 것보다 상부의 명령이나 집단의 질서에 얼마나 충실히 따랐느냐 하는 것이 더 높은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죄의 모든 책임은 위로 전가할 수 있지만, 최고 위치에 있는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죄에서 면책된다. 따라서 정책으로 설치된 군 위안소를 찾는 일본군인들은 그다지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도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3. ‘위안소 및 위안부’ 운영실태
3.1. 위안소 정책의 형성과 전개과정
군 위안소는 1905년부터 산발적으로 나타나다가 1932년경부터 일본군 점령지에 설립되기 시작하였고 1937년 말 이후 정부가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종전까지 지속되었다. 점령지의 확대와 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위안부 수요가 많아지면서, 일본군 및 육군성의 체계적 정책이 시행되었다.
대체로 시작 단계에는 군이나 정부의 중앙에 의뢰하거나, 군이 직접 설립 경영하는 비중이 높았다가, 곧 민간의 대대적인 진출이 이루어졌다. 후기에 오면 다시 군의 직접 개입의 정도가 높아졌다가, 전쟁 말기에는 매우 혼란된 모습을 보이는 변화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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